남북한 체육교류의 실태

남북은 1979년 제 35차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때부터 남북단일팀 구성을 위한 체육회당이 본격화 되어 1984년 로스엔젤레스 올림픽 게임,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게임, 1990년북경아시안게임 등이 개최될 때마다 남북단일팀 회담이 개최되었으나 무산되고 말았다.

 

 

다행히도 북경아시안게임에서 남북의 체육장과들이 1991년 포르투칼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남북단일팀을 내보내기로 합의 되어 단일팀을 구성한바 있고 1991년 제 41회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까지 이어지는 성과를 거두었다

.

 

이와같은 초기의 체육교류는 순수한 민간체육교류라기 보다는 남북한 당국의 적극적 지원에 기인한 면이 있어 정부주도에 의해 성사되었다 그러나 1991년 8월 북한 유도선수의 망명으로 북한측은 체육분야의 교류협력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국제 적인 체육행사에 빈번하게 불참하는 경우가 많아 체육분야의 교류가 활성화되지 못하였다.

 

 

그렇게 되자 우리 체육단체인 대한유도회가 북한유술협회에 1998년 벨로루시 제 1회 월드컵국제 유도대회에 남북단일팀 제의했으나 무산 되었고, 1999년에는 대한 축구협회가 한국에 배당된 2002년 월드컵 본선 32게임중 2게임을 북한에서 치르는 방안을 북한측에 제의 하였 으나 아직까지 확답은 없으나 사실상 어렵다는 내부지침을 세워 놓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순수한 민간단체 차원에서 1999년 현대와 북한의 아태평화위 원회가 남북체육교류의 정례화를 합의하여 현대의 남여농구단이 방북 (1999.9.28-29)하여 평양에서, 북한측 농구단이 서울(1999.12.22-25) 에서 남북친선농구대회인 '통일농구경기대회'를 가졌고, 이와 같은 경기를 시작으로 농구 외에도 축구, 배구, 탁구등 체육교류종목 수를 확대 개최키로 했다. 


 

또한 1999년 5월 우리 민주노총 대표단과 북한 조선 직업총동맹이 평양에서 실무회담을 열어 민주노총 축구 대표팀이 같은 해 8월 12- 13일 평양에서 분단이후 처음으로 남북노동자간의 '통일염원 남북 노동자 축구대회'가 개최되었다.  

 

 

아울러 2000년 제 27회 시드니올림픽대회 개회식때 남북한 임원 및 선수의 동시입장으로 이어지제 되어 남북 체육교류가 방북 일변도 에서 서로 오가는 형식으로 변화되는 모습은 지금까지 절름발이 교류였던 형태가 쌍방향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뜻해 고부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까지도 경제, 문화교류 등에서의 고비용 지급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획기적인 전환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 남북한 체육교육에 관한 상호교류는 전무한 상태 라고 볼 수 있고 북한의 교육관계자로 자체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의 대북 교육의식 또한 미흡한 실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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